본문 바로가기

들을거리/나만의 앨범

음악적 취향을 바꾸다

 

  최근 개인적인 일로 블로깅을 전혀 못했다. 새해 들어서 한 결심이 우려대로 정말 작심삼일이 되었다 ㅎㅎ. 허나 누구 말마따나 3일마다 다시 결심하면 되는 일 아닌가. 패턴이 깨졌으면 그것에 상심하지 말고 또 다른 패턴을 만들면 그만이다. 두 번째 앨범으로 무엇을 소개할까 고민을 해보았다. 그래서 고른 앨범이 바로 본 작품이다. 당연히 이 앨범에도 개인적인 추억과 의미가 있다. 들어보시라.

 

  때는 1990년 봄 정도로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때 대한민국의 남아로서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국방의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원래 신체발달 상(175cm 60kg)으로는 마땅히 현역으로 복무를 했어야 하지만 웬일인지 국방부에서는 나에게 퇴짜를 놓았다. 완전퇴짜는 아니고 반만... 그리하여 지금은 추억의 용어가 되어버린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하게 되었고, 18개월 동안 집근처 52사단에서 행정병으로 근무를 했다.

 

  사실 방위병으로 근무하면서 딱히 다른 사병들과 대인관계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지만, 유독 나를 신경써 준 선임(고참)이 있었다.  보직 선임인데다가 나이도 두 살 위였는데 그 형님이랑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공통 관심사를 발견했는데 바로 음악이었다. 그 형님은 대학 스쿨밴드에서 세컨기타를 친다고 했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물어보고는 "오 음악 좀 듣네" 하시는 거였다. 그러더니 주말에 자기네 집에 놀러오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간 토요일 오후, 그 형님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방안 전체에 가득 들어선 오디오, 기타, 앰프 등의 장비와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수많은 LP와 공연실황을 담은 비디오테입들... 점심으로 짜장면을 시켜먹고 형님은 이것저것을 꺼내어 직접 설명하며 틀어주었다. LP를 모은지 얼마 안된 나는 평소에 듣고 싶고 사고 싶었던 음반들을 마음껏 꺼내어 들어 볼 수 있었다. 주로 Hard Rock, Heavy Metal 계열의 음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가 어둑해져 이제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이거 알지?"라며 건넨 앨범이 있었다. 바로 이번에 소개할 Pink Floyd의 [The Wall]이라는 앨범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그들의 몇몇 작품을 FM라디오(전영혁의 음악세계 등)를 통해 익히 들어 보았고 그 앨범도 처음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형님은 LP를 보여주고는 TV모니터와 VCR을 켜더니 테입을 하나 집어넣었다.

 

  화면에 등장한 러닝타임 1시간반의 영화(? 개인적으로는 음반전체의 Video Clip이라 생각한다)는 헤비사운드 위주의, 그 동안의 나의 음악듣기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음악듣기 뿐 아니라 이후의 영화보기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 평소에 심장이 약하거나, 비위가 약하거나, 기괴한 장면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보아서는 안되는, 충격적인 장면이 연이어 이어지며 한시간 반 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였다. 그 다음 날 나는 바로 음반점으로 달려가 그 음반을 찾았으나 아뿔사 라이센스 발매가 되지 않았다. ㅠㅠ 하는 수 없이 청계천 중고음반 가게을 뒤져 겨우 해적판(빽판)을 하나 찾아내었다. 다행인지 그 해적판 치고는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음질도 들을 만했다. 게다가 속지에 가사까지 들어있었으니 그것으로 정식 라이센스음반(CD)이 발매될 때까지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이 음반을 거짓말 좀 보태면 한 100번은 들은 거 같다. 나중엔 첨부터 끝까지 가사를 줄줄 외웠었다. (믿거나 말거나)

 

 

( 해적판 치고는 엄청난 퀄리티를 자랑했던 바로 그 놈. ㅎㅎ)

 

 

  어쨋든 이 앨범을 계기로 Metallica, Anthrax, Megadeth, Helloween, Rising Force 등 빠르고 강한 쪽 음악만 듣던 나는 본격적으로 Progressive 음악에 빠져들었고 ELP, YES, Genesis 등의 British Progressive를 거쳐 Italian Progressive까지 가게 되었다. 이 쪽 음반은 다음에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지난 번에도 밝혔듯이 앨범 자체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개인적인 역량의 부족을 핑계로 다른 훌륭한 블로그에 미루고자 한다. 대신 개인적인 견해 또는 취향을 언급해 보자면, 사실 Pink Floyd 하면 생각나는게 밴드의 리더이자 작사, 작곡을 도맡고 앨범의 concept을 제공하는 Roger Waters이다. 그래서 이 앨범도 언뜻 보면 Roger와 그의 백밴드 같은 인상이 짙다. Roger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가사며, 다분히 서사적인 앨범 구성(그래서 이 앨범의 originality를 훼손하지 않고 영상으로 제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이며 Roger의 역량이 매우 두드러지며 (이전 앨범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다른 멤버들은 한 발 뒤로 물러서 연주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 경향은 다음 앨범인 [Final Cut]에서 더욱 심해져 결국 밴드가 해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The Wall]과 [Final Cut]을 비교해서 들어보면, 밴드의 역량은 개인의 뛰어난 아이디어 못지 않게 멤버간의 chemistry와 연주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기본을 확인할 수 있다. [Final Cut]도 훌륭한 앨범임에 틀림없지만 뭔가 심리적으로, 음악적으로 허전함을 지울 수 없다. (물론 Roger가 빠진 [A Momentary Lapse Of Reason]이나 [The Division Bell]도 마찬가지다) 특히 밴드의 기타를 담당하는 David Gilmour의 기타워크는 내가 개인적으로 Pink Floyd의 음악에 몰입하게 된 강력한 이유이다. "Thin Ice","Another Brick In The Wall","Mother","Young Lust","Hey You","Comfortably Numb" 등의 곡에서 들려주는 단순한 듯하면서 블루지한 그의 기타플레이는 화려한 플레이를 선호하는 다른 거물 기타리스트들의 그것과 구별되는 것이다. 

 

  그리고 약간 신경질적이고, 악센트가 강한 Roger의 vocal과 대비되는 David의 달달한 음색(얼굴은 상남자인데 목소리는 미소년이다 ^^)은 텐션이 강하게 걸려 있는 앨범 사이사이에 기분 좋은 이완을 이끌어낸다. 그의 팝적인 성향은 솔로 앨범에서 더욱 두드러진데, 솔로 2집 [About Face]에 들어있는 "Near The End"는 그의 달달한 vocal과 기타플레이의 전형이다.

 

  마지막으로, 이 앨범을 제대로 즐기고 싶으면 앞에서 언급했던 Alan Parker 감독의 영화를 먼저 볼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리고 나서 음반을 들으면 상당히 음악이 visual 해질 것이다. 단, 절대로, 반드시, 무조건, 노약자나 심신이 허약한 자, 비위가 약한 자 등은 NEVER, 보지 말 지어다. 큰일난다.

 

 

< 수록곡 >

 1. In The Flesh? (3:18)

 2. The Thin Ice (2:30)

 3.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1 (3:18)

 4. The Happiest Days Of Our Lives (1:45)

 5.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 (3:58)

 6. Mother (5:37)

 7. Goodbye Blue Sky (2:49)

 8. Empty Spaces (2:07)

 9. Young Lust (3:31)

10. One Of My Turns (3:36)

11. Don't Leave Me Now (4:16)

12.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3 (1:26)

13. Goodbye Cruel World (1:07)

14. Hey You (4:41)

15. Is There Anybody Out There? (2:58)

16. Nobody Home (3:10)

17. Vera (1:33)

18. Bring The Boys Back Home (1:24)

19. Comfortably Numb (6:24)

20. The Show Must Go On (1:37)

21. In The Flesh (4:15)

22. Run Like Hell (4: 19)

23. Waiting For The Worms (4:04)

24. Stop (0:35)

25. The Trial (5:26)

26. Outside The Wall (1:33)

 

추천 트랙 : 5 / 6 / 9 / 10 / 14 / 16 / 19 / 20 / 22

'들을거리 > 나만의 앨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첫 경험...  (0) 2013.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