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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거리/나만의 앨범

나의 첫 경험...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무척이나 설레고 흥분된다. ( 응? )

 

때는 1989년 여름, 나는 당시 대학 2학년을 마치고 남들처럼 군대영장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이것 저것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즈음에 나는 한 기타리스트에 완전히 꽂혀 있었다. 스펠링도 희한해서 라디오 방송에서 소개하는 DJ들 마다 서로 다르게 부르던 스웨덴 출신의 기타리스트 [Yngwie Malmsteen]. ( 처음에는 대부분 '잉위 맘스틴'이라고 부르다가 나중에 '잉베이'라고 함.)

 

당시 그의 솔로프로젝트 [Rising Force]는 전세계적인 화제가 되었고, 세상의 모든 음악의 끝은 Rock 음악, 그 중에서도 Heavy Metal 밖에 없다고 믿고 있었던 나에게 잉베이는 완전히 신 그 자체였다.

 

그 때까지는 변변한 오디오 없이 그냥 FM방송과 '워크맨'(우리나라에선 마이마이로 통함 ^^)으로 만족하며 살던 나에게 이 스케일 큰 기타리스트는 '좀더 훌륭한 소리로 들어 줄 순 없니?'라며 유혹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하고 있던 알바비를 받은 어느 날 저녁 나는 앞뒤 가릴거 없이 무조건 LP를 사서 들어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마침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자주 다니던 버스길 옆에 레코드점 하나를 발견하고 서둘러 내려버렸다.

 

대방동 서울공고 후문 근처 [서울 음악사].

지금도 레코드 점 이름을 기억하냐고? 전혀 아니다.

 

 

( 자신만의 LP를 가졌다는 사실에 너무 감격한 나머지 그 때부터 한동안 나는 음반을 모을 때마다 속지나 귀퉁이에 구입한 날짜, 구입한 곳, 입수경위 등을 써 놓았다. )

 

 

암튼 두근거리며 처음 들어간 조그만 가게에는 아주 예쁘게 생긴 누나가 상냥하게 나를 맞아 주었다. 내가 처음에 사고자 했던 LP는 [잉베이]가 [Steeler]라는 첫번째 밴드를 탈퇴하고 새롭게 가입한 밴드[Alcatrazz]의 84년작 [No Parole From Rock 'N' Roll]이었다. 하지만 그 예쁜 누나가 건네어 준 음반은 처음 사는 내가 보기에도 조금 이상했다.

 

우선 앨범 겉표지가 비닐로 덮여있지 않았고 프린트도 너무 조악해 보였다. 게다가 보통 '속지'라고 불리는 안내지는 커녕 LP를 보호해 주는 속비닐도 없었다. 그러고도 값은 상대적으로 다른 것보다 비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그 앨범은 국내 발매가 정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고 그 예쁜 누나의 길고 가는 하얀 손에 들려있던 LP는 소위 '빽판'이라고 불리웠던 것이다.

 

"이거 이래 봬도 구하기 어려운 건데?"  잠시 멈칫하고 있던 나에게 그 예쁜 누나는 재빠르게, "그럼 대신 이거 들어볼래? 이게 제일 잘나가는 건데."라며 LP 여러 장 중 한 장을 뽑아 건네 주었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퀄리티가 느껴지는 커버며, 무엇보다도 비닐로 단단히 밀봉되어 있었고, 뒷면 아래쪽 가운데 당당히 찍혀있던 [성음] 두 글자. 만듦새가 비교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가격도 [Alcatrazz]의 앨범보다도 오히려 저렴했다. (두장짜린데도 ^^)

 

처음 들어본 밴드라 미심쩍은 마음이 있었지만 왠지 쿨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뭍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값을 치루고 나왔다.

 

 

( 2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상당히 잘 만든 음반이라는 것을 앨범 커버아트가 증명하고 있다. )

 

 

그렇다. 내 인생의 첫 음반 [Metallica]의 네번째 앨범 [...And Justice For All]은 그렇게 나에게로 왔다. ( 물론 그 이전에도 카세트테이프 형태로 된 것을 구입한 적은 꽤 있다. 하지만 그것을 보통 '음반'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

 

사실, 그 예쁜 누나의 은근한 강요가 없지는 않았으나, 이 앨범을 선뜻 사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앨범커버의 아트워크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 보아도 '예술'이다.

 

게다가 제목부터 거창하기 이를데 없다. 그대로 옮기면 "모두를 위한 정의"일텐데. 언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정의'가 '누구를 위한'이란 수식이 붙을 수 있는 개념인가? '정의', '평등', '자유' 등등 뭐 이런 것들은 원래 공기나 물처럼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던가? ( 이야기가 옆으로 빠졌다. ㅡ.ㅡ;; )

 

어쨋든 잔뜩 기대를 하고 음반을 샀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당시 우리 집에는 오디오가 없었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예쁜 진공관앰프와 작은 스피커가 달린 서랍장식의 턴테이블(당시에는 그것을 '전축'이라 불렀다)이 있었지만 그마저 고장나서 아버지가 고물상에 팔아버리셨고 그 이후로는 집안 형편상 오디오를 두지 못했다.

 

어쩔까 하다가 번뜩 생각이 났다. 당시 나는 이모네 사촌동생을 가르치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세번씩 드나들었고 마침 레코드점이 이모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이다.

 

이모께 대충 양해를 구하고 비닐을 칼로 자른 후 안방에 있던 턴테이블에 걸어 보았다. 그때 일을 지금도 있지 못한다. 처음에 들려나온 소리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일단 내가 기대한 것은 '잉베이 스똬일'의 심포닉한 [바로크메탈]이었으나, 스피커에서는 밑도끝도 없이 때려부수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그것도 처음에 볼륨 조절을 잘못해서(이 앨범의 첫곡 [Blackened]의 인트로는 모기소리 같은 트윈기타가 "Fade-In" 된다.) 아주 큰 낭패를 봤다. 이런 ㅠ.ㅠ

 

고장이 난 줄 알고 볼륨을 끝까지 올렸는데 갑자기 천둥치는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퍼졌다. 그러자 부엌에 계시던 이모와 자기방에 있던 사촌여동생까지 놀라 튀어나왔다. 대학 잘 다니고 공부 열심히 하고 성실하며 모범적이라고까지 나를 치켜세우시던 이모의 시선에 약간씩 의심의 눈초리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 아마 그 때부터일 것이다.

 

서둘러 이모집을 빠져 나오는데 계속 그 예쁜 누나 얼굴이 생각났다. 아놔.

 

 

아픈 첫경험(?) 이후에도 나는 틈날 때마다 조금씩 LP를 사모으기 시작했고, 장교로 복무중이던 형이 그걸 안타깝게 여겨 박봉의 월급을 털어 작은 미니컴포넌트를 사줌으로 이 앨범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 나는 이 앨범의 카세트테입을 구입해서 테입이 늘어질 때까지 들었고 후에 CD가 대중화된 이후에는 CD로 계속해서 오래도록 감상을 했다. 그래서 새로운 음향기기(주로 휴대용)를 구하게 되면 가장 먼저 들어보는 음반이기도 하다.

 

항상 무슨 일이든 첫경험은 강렬하기 마련이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래서인지 음반에 대해 쓰려고 시작한 글에 음악적인 이야기는 쏙 빠지고 주저리 주저리 사설만 길어졌다.

 

사실 나는 음악에 대해 잘 모른다. 악기를 비롯해 음악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을 뿐더러 개인적으로 음악은 나에게 기본적으로 '감상의 대상'이므로 이해나 분석 같은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영역은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다른 훌륭하신 블로거들의 수많은 글 들이 이미 존재한다.

 

그래도 명색이 앨범을 소개하는 글인데 그냥 끝내기는 좀 그래서 이 앨범이 한국에 라이센스 발매되었을 때 속지에 있는 해설을 옮김으로써 미안한 마음을 면하고자 한다. ( 인용한 글에 대한 저작권이 문제가 되면 삭제하겠습니다. )

 

 

 

 

< 수록곡 >

1. Blackened (6:40)

2. ... And Justice For All (9:44)

3. Eye Of The Beholder (6:25)

4. One (7:24)

5. The Shortest Straw (6:35)

6. Harvester Of Sorrow (5:42)

7. The Frayed Ends Of Sanity (7:40)

8. To Live Is To Die (9:48)

9. Dyers Eve (5:12)

 

... 전략『 앨범 타이틀과 어울리는 재킷의 일러스트(정의의 여신, 법의 여신 임에도 불구하고 공정을 기하기 위해 두 눈을 천으로 가리고 있고, 한 손에는 저울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맡은 바를 처리함)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며, Concept 깊이를 더해 주고 있다. 또한 앨범에서 1곡씩의 역할을 강조시켜 주는 각 가사들의 내용은 공통적으로 한 주제에 연결되며, 전체적으로 흐르고 있는 내용은, 현대사회가 빚어낸 어두운 면에서 오는 불신, 인간성의 상실 등을 예리하게 분석하여 분출해내었다. 아울러 사운드 면에서도 첫 곡부터 끝까지 한치의 빈틈도 찾을 수 없는 긴장감과 분위기를 지속시키고 있으며, 특히 Lars의 변화무쌍하고 힘이 넘치는 리듬 패턴과 Kirk의 다채롭고 보다 원숙해진 플레이는 괄목할 만하다.

총 수록곡 9곡 중 첫 곡인 "Blackened"는 긴박한 드러밍과 더불어 프렛 사이를 자유롭게 누비는 Kirk의 변주와 리프의 힘을 느끼게 해 준다.

타이틀 곡인 "... And Justice For All"은 드럼의 two-Bass 사용이 두드러지게 들리는 곡으로, Kirk가 잘 사용하지 않던 아밍주법(트레몰로 암을 이용하는)이 에드립의 극치를 이룬다.

드럼 소리가 Fade-in 되는 인트로로 전개되는 B 면의 첫 곡 "Eye Of The Beholder'는 James 와 Kirk의 트윈 기타가 멋진 조화를 이루었고, James의 리프가 예전보다 훨씬 복잡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Kirk의 애들립 스케일이 무척 고조되며 무겁다.

전쟁터의 소음으로 시작되는 'One' 은 어쿠스틱한 분위기가 매력이며, 엄숙하고 비장함을 느끼게 하는 부상병의 절규가 가슴을 파고 들며, 끝부분에서 전개되는 베이스와 드럼 기타의 일관된 플레이는 마치 기관총 소리를 연상케 한다.

C면의 첫 곡 'The Shortest.."는 드럼과 보컬의 조화가 좋아서 Lars가 '제일 좋아하는 곡' 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었다.

로마 시대의 행진곡 같은 도입부가 특색있는 'The Frayed.."는 드러머의 심벌 연주가 감칠맛나고, 중반 멜로디 라인에서 드러나는 Kirk의 연주는 이 앨범에서 가장 기교적인 애들립을 구사하고 있다.

D면의 시작이며 연주곡인 "To Live..."는 James의 어쿠스틱 기타가 내는 영롱한 아르페지오 주법의 아름다움으로 시작과 끝을 맺고 있으며, 중반부에서 String같이 들리는 Kirk의 기타음이 특색있으며 그의 자유스럽고 다양한 연주 솜씨를 유감없이 접할 수 있는, 4집에서 가장 긴 곡이기도 하다. (이 곡 중에는 Cliff Burton이 썼던 글이 나레이션 되기 때문에 순수한 연주곡은 아니지만 그것이 좋은 느낌으로 액센트를 주고 있다.)

대미를 장식하는 곡은 가장 Metallica다운, 트래쉬의 진수 "Dyers..."로, 몰아치는 그들 특유의 사운드와 Kirk의 빠른 연주는 숨결을 뺏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가슴에 전달된다. 매우 단순한 몇 개의 코드만을 사용하며 끊임없는 변주를 걸어주는 Kirk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Metallica는 이 4번째 앨범에서 그들이 지닌 표현력과 기술의 진보를 드러내며 이전보다 한 단계 높은 음악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 가사를 쓴 James는 이제 새롭게 평가될 것이다.』 - 해설 성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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